2025-08-28 | 관리자 | 조회 303
양성평등, 공존과 성장의 길을 찾아서
광주YWCA 김순자 회장
양성평등주간(9월 1일~7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양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와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되새겨봅니다. 거리에 내걸린 현수막과 기념식장의 문구를 보며, 많은 분들이 그저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행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양성평등주간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법으로 명시한 소중한 이정표이자, 모든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지향점입니다.
양성평등주간은 사회,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지정되었습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실질적인 성평등 이념을 매년 되새길 수 있는 날인 것이죠. 본래 ‘여성주간’이라는 명칭으로 1995년 시작되었으나, 2014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2015년 7월 1일부터 ‘양성평등주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후 2020년부터는 매년 9월 1일부터 7일로 그 기간이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명칭의 변화는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평등의 시야를 ‘여성의 발전’에서 ‘모든 성별의 조화로운 발전’으로 확장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매년 해당 기간 동안 양성평등의 이념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넘어, 성별과 지역, 계층 등에 관계없이 이러한 문화를 누구나 영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양성평등기본법」이 정의하는 양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근본적인 가치이자 이상적인 사회를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양성평등의 가치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중요한 법률인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는 바로 그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매년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1년 중 1주간을 ‘양성평등주간’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이 발표된 날을 기념하여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정하고,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양성평등 임금의 날’까지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법조문들은 양성평등이 단순히 여성의 권리 신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뿌리와 경제적 현실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인 사회 발전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권통문의 날’은 1898년 격동의 시대에 발표된 여성인권선언문의 정신을 계승하여 과거의 용기를 현재로 이어받자는 약속이며, ‘양성평등 임금의 날’은 성별 임금 격차라는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양성평등이 곧 경제적 평등과 직결되며, 모두가 자신의 노동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임을 시사합니다.
양성평등주간은 이념을 되새기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객관적으로 점검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아버지의 육아 참여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흐름이 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통계는 우리의 노력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에 불과하여, OECD 평균인 33.8%에 한참 못 미칩니다. 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최근 통일부가 주최한 국제포럼에서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주한영국대사가 참석을 거부한 사례는, 한국 사회의 성 평등 의식이 아직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능력에 따라 패널을 섭외했다’는 변명은 오히려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는 불평등한 관행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또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남녀 차별의 요소는 많이 줄었지만, 가사나 자녀 양육, 노부모 부양 등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더 많은 의무가 주어지고, 남성에게는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책임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실도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양성평등이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모두가 자유롭고 조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가치임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일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페미니즘으로 인한 ‘역차별’ 인식이 확산되며 남녀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도 보이지만, 진정한 양성평등은 여자의 권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에게 주어졌던 무거운 책임감을 나누고, 여성에게 가해졌던 차별의 짐을 덜어주어, 남성과 여성이 사회 참여를 통해 책임과 기회를 함께 짊어지고 서로 배려하며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양성평등 논의는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양성평등(二性平等)’과 ‘성평등(性平等)’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입니다. 법적으로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있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며 다양한 가족 형태와 젠더 정체성을 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양성평등과 성평등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는지 다양한 견해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언어가 갖는 힘 때문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식을 축소할 수도, 확장해 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정책을 둘러싼 사회 환경과 가족 구성원의 변화, 1인 가구의 증가, 현 사회에 대두되는 다양한 문제, 시민의식의 변화 등 우리의 삶과 일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등의 의미를 확장하는 의미로서, 현재의 ‘양성평등기본법’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평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며, 우리 사회가 더욱 포용적이고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자, 미래 세대에게 더욱 공정하고 열린사회를 물려주기 위한 중요한 자성(自省)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젠더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진정한 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법과 제도는 양성평등 사회로 가는 튼튼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지어질 집을 짓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양성평등은 더 이상 정부나 특정 단체의 과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성평등의 주체이자 수혜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중요하며, 특히 일상생활 속에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아빠의 육아휴직 의무화 정책을 도입하고 있는 것은 양성평등 실현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이며, 가정 내 역할 분담의 균형을 맞추는 데 바람직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전통적으로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을 깨뜨리고, 모든 가족 구성원이 동등하게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유의미한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양성평등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사 노동과 육아를 남성과 여성 모두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함께 분담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나 편견 어린 언행을 경계하고,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서는 성평등 관점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합니다.
양성평등은 그저 한 성별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의 경계를 초월한 개인의 잠재력 실현과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 번영을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입니다. 뿌리 깊은 성 고정관념과 편견의 해체, 상호간의 존엄성 인정, 그리고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의 균형 잡힌 역할 분담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이 사회의 공정성과 행복이 공존하는 사회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광주가 민주와 인권의 도시로서 양성평등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길 희망하며, 우리 모두의 작은 노력이 모여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지는,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나부터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하는 진정한 이유이자,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